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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

 

인상이 1년전과 비해 많이 달라졌으며 나는 그것을 세수를 하며 느낀다. 손과 얼굴 사이에 있는 물을 통해 나는 균등히 분열하던 세포들이 더 이상 그 행로를 포기했음을 알며, 그것은 단순한 노화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자주 짓게 되는 표정과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감정에 기초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늦은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얼굴과 몸에 물을 묻히는 시간에는 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순간들에도, 내가 신경쓰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각각의 개별자들은 주체로서 움직이며 우리는 단순히 그(것)들을 타자의 삶이라고 부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느냐를 떠나 각각의 주체들에게 나는 또다른 객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짓게 되는 표정, 지하실에서 짓게 되는 음습한 표정, 습기가 가득찬 병원에서 내가 아마도 지었을 표정, 그 무수한 표정들 안에 담겨진 감정 안에서 나는 그때그때의 감정만을 기억하며, 그렇기에 기쁨과 슬픔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줄지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망각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망각은 때로 안타까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된 표정(감정)을 기억하게 될 때, 나는 과연 오늘 밤처럼, 얼굴에 비누를 묻히다 소스라치게 놀라 거울을 쳐다보게 될 것이며, -7.0 디옵터가 넘는 근시의 시간에도, 무수한 객체들이 (안타깝게도) 언뜻언뜻 스치는 선에서 존재함에 나는 몸서리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시간이 다시 내게 오지 않음을 안다. 그때까지는 어떠한 감정도 내게 이입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읽게 되지 않을 책. 만나게 되지 못할 사람들. 윤색시키지조차 못하는 기억들. 나는 그 모든 것까지를 오늘의 내 표정에서 읽을 것이며 때로 터프하게 그것을 자주 만지작거릴 것이다. 안경을 벗고 나면 사십센치 안 거리에 있는 거울의 내 뒤집어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손대, 그리고 그 거울을 보는 횟수조차 -오늘에서처럼- 늘 [꽤 오랜만에]이루어질 때, 그 희소함은 배가되어 내 안에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자주 얼굴을 문질러댔으며 각질들은 덧없이 떨어지고 있다.

천천히 얼굴 근육을 움직여 본다. 내가 내가 아닌 듯 느껴진다. 원래부터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 새롭다. 삼년 뒤의 내 감정이 과연 어떠할지를 추측해본다. 그때까지도 간직되고 싶은 감정들이 온전하기를 바란다. 충분히 슬프거나 기쁘지 않은, 거기 있을 감정들. 독자성이라고 해도 좋고 관조적이라고 해도 좋지만 나는 그것을 자주 이윽함이라 생각하고 만다. 예의 감정이 유지되는 동안 나는 삼년이고 오년이고를 떠나 늘 같은 표정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얼굴안에 나타나는 내 소우주들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유비의 그것을 누군가는 후흑이라고 불렀다. 이윽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냥 자주 모니터에서 바스트 샷과 풀 샷 사이에서 낑겨 살다보니까 든 생각일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어떤 말을 할 지 모르게 되어...대충 수건질을 한 뒤, 내 감정을 천천히 쓸어올리며 어루만진다. 이런 경우의 목욕은 심리적 위무가 될 것이라고 홀로 생각하며.

by Franz | 2008/08/20 01:25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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